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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경 칼럼] 시간, 인맥, 공간의 정리와 삶의 여유 관리자2013-07-15

관리자   /   2013-07-15 kibwa@kibwa.org

회사창립 13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주 사무실을 이전했다. 서소문에서 홍대입구로 입성한지 만 7년만이다. 건물주의 요청으로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고 갑자기 사무실을 알아보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 운 좋게 지척에서 거의 비슷한 규모와 조건의 사무실을 발견해 큰 어려움 없이 자리를 옮겼다. 이사를 앞두고 사무실 곳곳에 숨어있는 문서와 물건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정리하고 버리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을 소진해야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묵은 짐들이 구석구석에 쌓여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그래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책 장 한 구석을 비워낼 때마다 속도는 한 단계 내려가고 창밖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새삼 내가 얼마나 정리를 못하고 사는 인간인지 실감하면서 반성도 많이 했다.

실제로 필자는 정리를 참 못한다.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건 좋아했지만 청소는 싫어했던 것 같다. 정리를 못하는 이유는 바쁘고 시간도 없지만 게으르기도 하고 요령을 잘 몰라서 손댈 엄두가 안 난다. 그만큼 마음과 체력, 공간 등의 여유가 없다. 혹자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강박관념을 가진 유형의 사람들이 생각처럼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을까봐 겁이 나서 정리를 잘 못한다고도 한다. 어찌 보면 이 말도 공감이 간다. 좋은 자료가 생기면 바로 읽어보고 정리를 해야 하는데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간다. 머릿속에 아직 입력이 안 된 자료를 그냥 버리면 불안해지니 강박관념 맞는 것 같다.

일이 끝난 후에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일이 끝나면 더 바쁜 다른 일이 터져서 손을 못대고 금방 치울 수 있는 것들이니 나중에 치워도 된다고 생각해서 놓아두고 그런 것들이 계속 쌓이는 경우, 알면서도 피곤해서 꼼짝도 하기 싫고 행동이 게을러서 안 치우는 경우도 있다. “천재적인 사람 중에 정리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에 솔깃한 적도 있지만 스스로 천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말은 별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단순한 직장인이 아닌 회사 대표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남보다 훨씬 막중한 책임을 안고 살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어쩔 수 없이 못 본 척 못 들은 척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한정된 시간 내에 감당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챙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리를 하지 못하면 사소한 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순간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비서가 책상 위에 놓아준 우편물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 중요한 청첩장을 날이 한참 지난 뒤에야 열어보게 되거나 자동납부 신청을 미처 못 한 청구서나 범칙금통지서의 경우 납부일을 놓쳐 독촉장이 쌓이는 경우도 발생하고 중요한 약속시간과 장소를 혼동하기도 한다. 국내 1호 정리컨설턴트이자 네티즌 사이에서 ‘정리의 신’이라 불리는 윤선현씨는 정리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의 여유와 행복을 도둑맞고 있다면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정리해야 할 자원이 바로 시간, 인맥, 공간이라고 지적한다. 정보가 넘쳐 스팸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시간, 인맥, 공간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정리못하고 살아온 내 자신이 참으로 서글퍼진다.

역량에 비해 턱없이 과분한 일들을 감당해내며 안간힘을 쓰는 동안 사무실도 집도 버려야 할 것들은 쌓여만 가고 점점 공간이 비좁아지고 있고 그 무게에 짓눌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있는 것 같다. 여유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했던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는 정리를 잘 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